가을이 깊어질수록 동해는 더욱 푸르러진다.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물러간 자리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높아진 하늘 아래 수평선은 한층 선명해진다. 산과 들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 경북 울진에서는 조금 다른 가을이 기다린다. 형형색색 단풍 대신 짙푸른 바다가 길을 물들이고, 낙엽 밟는 소리 대신 파도 소리가 발걸음을 따라오는 곳. 바로 울진 해파랑길이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바다와 자연, 지역의 삶을 함께 만나는 걷기 여행길이다. 그중 울진을 지나는 24~27코스는 후포항과 직산항, 월송정, 망양정, 은어다리, 죽변항 등 울진의 대표적인 해안 명소들을 품고 있다.
울진 해파랑길의 매력은 단순히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데 있지 않다. 정겨운 항구에서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작은 어촌마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여유를 느낀다. 소나무 숲에서는 고즈넉한 쉼을 얻고, 옛 선비들이 사랑했던 정자에 올라서는 동해의 장쾌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죽변항 수산물축제까지 더해져 가을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풍성하게 할 예정이다. 눈으로는 바다를 담고, 귀로는 파도를 듣고, 입으로는 울진의 신선한 수산물을 맛보는 여행. 올가을 울진 해파랑길을 걸어야 할 이유다.
후포항, 사람 사는 정겨움으로 시작하는 바닷길
울진 해파랑길의 가을 여정은 남쪽 끝 후포항에서 시작된다. 해파랑길 24코스의 출발점인 후포항은 울진을 대표하는 어항으로, 이른 아침부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의 활기가 가득하다.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과 바삐 움직이는 어민들, 싱싱한 수산물이 오가는 풍경에는 관광지의 화려함과는 다른 소박한 매력이 있다. 항구를 따라 걷다 보면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함께 울진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후포항에 왔다면 등기산공원과 등기산 스카이워크를 빼놓을 수 없다. 항구 뒤편 언덕에 자리한 등기산공원에서는 후포항과 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로 뻗은 스카이워크에 서면 발아래 펼쳐지는 파도와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다.
후포항은 울진의 맛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울진대게를 비롯한 다양한 수산물이 여행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항구에서 든든하게 식사를 즐긴 뒤 해안길을 걷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후포항의 진정한 매력은 거창한 풍경보다 그 안에 깃든 삶의 온기에 있다. 항구의 활기와 바다의 여유가 공존하는 후포항에서 울진의 가을 여행이 시작된다.
직산항, 작은 항구에 머무는 가을의 고요함
후포항을 뒤로하고 해파랑길 24코스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평해읍 직산항에 닿는다. 후포항이 어민들의 활기로 가득한 항구라면, 직산항은 작은 어촌마을의 소박함과 한적한 바다 풍경이 매력적인 곳이다.
직산항은 화려한 관광시설이나 북적이는 인파 대신, 방파제와 작은 어선들이 어우러진 정겨운 풍경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항구에 가지런히 정박한 어선들과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낮은 언덕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목적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항구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물과 어구가 놓인 선착장,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하는 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을 위해 꾸며진 풍경이 아닌,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여행의 한 장면이 된다.
직산항 인근에는 동해의 푸른 물결이 펼쳐지는 직산해변도 자리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는 수시로 바다 풍경이 모습을 바꾼다. 특히 가을에는 여름철의 북적임이 잦아들고, 시원한 바람과 파도 소리가 한적한 해변을 채운다.
직산항은 바다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알려진 곳이다. 방파제 주변은 감성돔과 볼락 등 다양한 어종을 만날 수 있는 낚시 명소로 꼽힌다.
해파랑길을 걷는 여행객에게 직산항은 잠시 속도를 늦추기 좋은 곳이다. 빠르게 지나쳤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작은 풍경들이 걸음을 늦출수록 선명해진다. 크지 않은 항구가 전하는 소박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월송정, 소나무 숲이 품은 가을의 여유
직산항에서 해안길을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향하면 평해읍 월송정을 만난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월송정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동해의 풍경이 어우러진 울진의 대표적인 명승지다.
월송정의 매력은 정자에 이르기 전부터 시작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길을 감싸고, 솔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발걸음을 부드럽게 이끈다. 바다가 잠시 모습을 감춘 숲길에서는 파도 소리마저 아득하게 들린다.
숲길을 지나 정자에 다다르면 비로소 푸른 동해가 시야에 들어온다. 짙푸른 소나무와 맑은 하늘,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한 폭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화려한 단풍이 없어도 가을의 깊이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월송정 인근 구산해변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부드러운 백사장과 울창한 해송 숲이 어우러진 해변은 한적한 가을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여름철 피서객들로 북적였던 해변에는 선선한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가 남아 여행객에게 편안한 쉼을 선사한다.
월송정에서는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솔숲을 천천히 걷고, 정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충분한 휴식이 된다.
망양정, 옛 선비들이 사랑한 동해의 절경
월송정이 고즈넉한 솔숲의 정취를 품고 있다면, 망양정은 탁 트인 동해의 시원함을 간직한 곳이다.
해파랑길 25코스에서 만나는 망양정 역시 관동팔경의 하나다. 조선 숙종이 그 아름다운 경치를 높이 평가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내렸다고 전해질 만큼 예부터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을 알렸다.
망양정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오르면 점차 시야가 넓어진다. 발아래 펼쳐지는 해안선과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먼바다까지 이어지는 수평선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특히 가을 망양정의 바다는 더욱 선명하다. 높고 맑은 하늘 아래 푸른 바다와 흰 파도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다. 수백 년 전 이곳의 절경을 노래했던 선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다.
망양정 인근 해맞이공원과 망양정해수욕장도 가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바다를 이번에는 해변에서 가까이 마주하며 걷는 것이다. 발끝으로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와 선선한 바닷바람은 여행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춘다.
망양정의 가을은 화려하지 않다. 다만 눈앞에 펼쳐진 바다 하나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풍경을 선사한다.
은어다리,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낭만의 길
울진 해파랑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와 강이 만나는 특별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근남면 수산리 일원의 은어다리다.
해파랑길 26코스의 출발점인 수산교 인근에 위치한 은어다리는 은어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인상적인 울진의 대표적인 산책 명소다.
은어는 바다에서 성장한 뒤 강으로 돌아오는 회유성 어류다. 은어다리는 이러한 은어의 생태적 특징을 형상화한 공간으로, 울진의 청정 자연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리 위에 서면 강물과 바다가 이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햇살을 받은 물결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멀리 펼쳐진 동해는 깊고 푸른 빛깔을 드러낸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은어다리는 한층 낭만적이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강물 위로 노을빛이 내려앉으면, 낮 동안의 푸른 풍경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산책하며 추억을 남기기에도 좋다.
은어다리 인근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6코스는 연호공원과 봉평해변 등을 거쳐 죽변항으로 이어진다. 강과 바다, 공원과 숲길을 두루 만날 수 있어 울진의 자연을 다양한 모습으로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죽변항, 가을 바다의 맛과 축제의 즐거움을 만나다
후포항에서 시작해 직산항과 월송정, 망양정과 은어다리를 지나온 여정은 죽변항에서 또 다른 즐거움과 만난다.
울진 북부를 대표하는 항구인 죽변항은 싱싱한 수산물과 활기찬 어촌 풍경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 사이로 갈매기가 날아들고, 바다에서 갓 올라온 수산물이 오가는 항구에는 어촌 특유의 생동감이 넘친다.
고요한 솔숲과 한적한 해변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죽변항은 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오는 11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열릴 예정인 '2026 죽변항 수산물축제'는 가을 울진 여행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더한다.
죽변항 수산물축제는 울진 앞바다의 신선한 수산물을 만나고 어촌의 활기와 지역의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눈으로 담아온 동해를 이번에는 미각으로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이 기다린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은 뒤 즐기는 싱싱한 회와 해산물은 그 자체로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여행객들은 지역 수산물의 매력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울진 바다가 선사하는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박주희, 박현빈, 박서진, 나태주 등 인기 가수들의 흥겨운 축하공연이 더해져 축제의 열기를 한층 끌어올릴 예정이다.
죽변항 주변에는 여행의 발걸음을 붙잡는 풍경도 많다. 바다를 굽어보는 죽변등대와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용의 꿈길'은 죽변항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대나무 숲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풍경도 만날 수 있다.
걷는 즐거움에 보는 즐거움, 여기에 맛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죽변항은 울진 해파랑길 가을 여행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곳이다.
올가을, 조금 느리게 울진을 걷는다는 것
가을 여행이 반드시 붉게 물든 단풍을 찾아 떠나는 길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선선한 바닷바람이 더 깊은 계절의 정취를 전하기도 한다.
울진 해파랑길에서는 같은 동해를 바라보면서도 저마다 다른 풍경을 만난다. 후포항에서는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를 느끼고, 직산항에서는 작은 어촌마을의 고요한 일상을 만난다. 월송정에서는 소나무 숲이 전하는 쉼을 얻고, 망양정에서는 옛 선비들이 사랑했던 절경을 마주한다.
은어다리에서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죽변항에서는 가을 바다의 풍요로움을 맛본다. 특히 죽변항 수산물축제는 울진의 풍경을 즐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의 맛과 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해파랑길의 모든 구간을 완주할 필요는 없다. 마음에 드는 해변을 골라 걷고, 작은 항구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분주함은 멀어지고,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이 그 자리를 채운다.
올가을에는 울진으로 떠나보자. 후포항에서 직산항을 거쳐 죽변항까지, 바다와 숲, 역사와 사람, 그리고 신선한 수산물이 기다리는 길. 걷는 순간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울진 해파랑길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가을을 만나보자.